전문가 배제한 반려정책. ‘하루만에 보유세 철회’ 촌극 불렀다
정황근 장관, 동물복지·의료 행보 사실상 전무…“전담기구 설치·전문가집단 참여 필요"
“일하는 사람이 없다.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0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반려동물 생명 보장과 동물보호 문화 확산’을 5대 핵심과제 중 하나로 발표하자 정치권의 한 인사가 내뱉은 말이다.
이날 업무보고 주요 내용은 △동물학대·유기자 처벌·제재 수준 강화 △개식용 금지 관련 사회적 대화 지속 △개물림 사고 예방 강화 △반려동물 진료비 부담 완화를 위한 진료항목 표준화, 중요 진료비 공시, 중대 진료(수술 등) 예상 비용 사전고지 의무화 △반려동물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선 및 육성대책 마련 등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수의사법과 동물보호법 개정을 통해 이미 확정된 사안인데다, 농식품부의 단독 추진이 어려운 사안이라는 점, 과거 농식품부가 발표해 온 반려동물 정책과 대동소이하다는 점에서 ‘컨트롤C·V 정책이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황근 농식품부장관은 지난 5월 취임사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며 △유기동물 보호 인프라 확대 △학대행위자 처벌 강화 △반려동물 의료비 부담 완화 방안 마련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 산업 서비스 육성 등을 제시했다. 사실상 정 장관의 취임사 내용과 3개월 후 진행된 업무보고 내용이 판박이인 셈이다.
그사이 △개물림 사고 △동물학대 △반려동물 의료 및 보험 △반려동물업계 소상공인 경영악화 등 굵직한 사안들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신문지면을 도배했다.
하지만 동물정책 주무 장관인 정 장관의 취임 후 3개월 간 행보는 △예천곤충축제 방문 및 농업 현장 간담회 △전퉁주 제조·수출업체 현장 방문 △식품기술(푸드테크) 기업 간담회 △농정 소통 간담회 △식품·외식 물가 현장 점검 등으로 동물복지·의료정책과 무관한 발걸음만 보였다.
정부는 학대·개물림 사고 등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을 발굴하겠다며 ‘반려동물 소유자에 대한 보유세’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 계획을 발표한지 하루 만인 19일 이를 철회했다.
새 정부 들어 부자 감세로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한 시점에서 정부가 ‘반려동물 보유세’ 도입 움직임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서민들의 호주머니로 세수를 메꾸려는 것’이라는 반발이 일었다.
또한 찬반 논란이 뜨거운 쟁점에 대해 정책방향 설정 없이 ‘툭 던지는 식’의 즉흥적 행정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려동물 정책에 대한 농식품부의 재탕삼탕식 대책 발표와 ‘갈지자 행정’의 배경에는 무엇보다 정부 내 반려동물 전문가 부재와 정책의 단절성이 꼽힌다. 농식품부 내 반려동물 정책 담당자가 수시로 교체되는데다, 반려동물 정책을 책임지고 담당할 상급 기구가 없다 보니 정책의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허주형 대한수의사회 회장이 지난 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반려동물보험 활성화 정책토론회’에서 “지금 토론을 해도 몇 달 후면 정부 담당자가 또 바뀐다”며 “정부 조직에 반려동물을 체계적으로 담당하는 부서가 없다 보니 동물의료정책이 중구난방이 됐다는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동물권단체·소비자단체에 의존적인 정부의 반려동물 정책수립 구조, 민간 반려동물 전문가의 정책 참여 배제 등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꼽힌다.
국회 관계자는 “지난 몇 년 간 정부와 국회가 개최한 수십 차례의 반려동물 관련 토론회에 펫 산업계 인사는 배제돼 왔다”며 “전문가 집단인 수의계 또한 상징적으로 1명 정도만 참여 시킬 뿐 대부분 동물권단체·소비자단체 인사들이 토론자로 나와 토론회를 주도해 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동물의료 정책 토론과 수립에 있어 수의계가 배제되고, 동물산업 발전 전략 수립과정에서 산업계가 배제되는 현상들이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며 “이번 반려동물 보유세 번복 사태도 이 같은 정부의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 수립 구조가 불러온 촌극”이라고 비판했다.
[신은영 기자 / 빠른 뉴스 정직한 언론 ⓒ펫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