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켓 선수 동상의 비밀…둔감화·역조건형성

[윤정현 칼럼]

2024-04-03     뉴스펫
윤정현 동물행동전문가

필자의 훈련소에서 훈련하는 사역견들은 모두 환경적응훈련(Environmental walk)을 거의 매일 30-40분씩 1-2회 하고 있다.

훈련소의 정문을 나가면 한적한 숲길과 시골길을 지나 교통량이 많은 차도가 나오고 쇼핑몰과 상점, 펍들이 즐비한 번화가가 나온다.

가는 길에 철길을 가로지르는 육교를 건너기도 하는데 이 육교들은 개들에게 매우 중요한 환경적응훈련의 일부이다.

많은 개들이 높낮이의 변화에 더 민감하고 시멘트와 철판으로 이루어진 육교의 바닥 질감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며 계단이 뚫린(open stairs) 육교를 무서워하기도 한다.

자폐아동의 도우미견인 마일로는 훈련 중에 시각장애 안내견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시설을 제약없이 출입할 수 있고 시내의 카페나 상점 등 일반 반려견 동반이 제한된 장소에서 훈련을 하기도 한다.

마일로(11개월 래브라도). 사진 필자제공

상점의 자동문과 반사유리(처음 접하는 개들은 놀라는 경우가 많다)에도 항상 접근해서 개들이 익숙해지도록 한다.

시내의 번화가에서 항상 들리는 곳은 단연 이 크리켓 선수 동상이 있는 곳이다. 모두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몸을 앞으로 숙이고 정면을 응시하는 동상은 만나는 개들 중 열에 아홉은 반응을 하고 도망가려 하거나 짖고 또는 위협한다.

마일로는 서비스독으로서 상당한 환경적응훈련을 해 왔지만 이 동상 앞에서는 예외없이 목덜미의 털을 세우고 으르렁거리고 짖는가 하면 뒷다리 사이에 꼬리를 완전히 감추고 줄을 끌고 도망가려고 했다.

뒤돌아서 멀어진 후(리셋 이후) 다시 시도해 보았지만 여전히 심한 거부반응을 보였고 이날은 훈련을 중단했다.

동네 카페에서 훈련 중인 마일로. 사진 필자제공

다음날 다시 동상을 방문했고 이번에는 헬퍼독 로키(수컷, 3살 코커스패니얼)를 동행했다.

먼저 로키가 아무 거리낌 없이 동상에 접근하고 앞에서 로키가 간식을 받아먹는 광경을 지켜본 이후에는 마일로도 여전히 경계하기는 하지만 동상에 쉽게 접근했고 동상의 주머니에 먹이를 놓아두고 찾아서 먹게 하는 것을 수차례 반복하고 격려해 준 뒤에는 더 이상 경계하지 않게 되었다.

위협적으로 보이는 동상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키고 음식과 칭찬 등 긍정적인 것과 연관시키는 것, 즉 둔감화와 역조건형성(DSCC, Desensitisation and Counter-conditioning 이름은 거창하지만 사실은 간단한 동물행동교정 기술)이다.

이 둔감화 및 역조건형성(DSCC)은 필자가 공부한 임상동물행동학 과정에 단골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며 보상을 기반으로 하는 훈련 방법의 기본이다.

로키(왼쪽, 3살 코커스패니얼)와 피치스. 사진 필자제공
크리켓 선수 동상. 사진 필자제공
마일로-갑작스런 우박에 살짝 당황했다. 사진 필자제공
마일로-환경적응 훈련 중. 사진 필자제공
문제의 동상-모든 개들의 공포의 대상. 사진 필자제공
사회성 훈련 헬퍼독으로 활약 중인 로키-먼저 플레이바우 자세를 취해 놀이를 시작했다. 사진 필자제공

윤정현 훈련사가 운영 중인 반려견 문제행동 상담소 ‘올댓독’ 홈페이지(https://allthatdog.co.uk) 및 유튜브(https://youtube.com/@allthatdog)


윤정현

영국 ftk9 반려견 훈련사, 올댓독 동물행동전문가

○ 2023~ FTK9 (영국 노팅엄 소재) 반려견 훈련사

○ 2022~ 반려견 문제행동 상담소 ‘올댓독’ 운영

○ 2021-2022 MScin Clinical Animal Behaviour, University of Lincoln

(영국 링컨대학교임상동물행동학 석사학위 취득)

○ 2021-2022 전) 한국유기동물복지협회 훈련사/구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