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TV 방송이 가장 큰 타격...잘못된 동물보호법의 개정만이 살길

글 / 심용주

국비유학생으로 브라질에 파견돼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에서 동물행동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30년 이상 다양한 동물의 브리더로 활동하였으며 미래세대를 위해 동물복지에 기반한 건강하고 윤리적인 브리딩, 애호문화, 산업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무렵이면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펫과 관련한 정책이 미디어의 큰 주목을 받는 것 같다. 최소한 박근혜 대통령 집권기부터 펫산업과 관련한 진흥정책 패키지가 새로운 정부의 100대 주요 정책에 포함되어 온 것으로 기억한다. 근 10년쯤 된 일이다.

100대 정책이라는 것 자체가 새로운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이나 목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에 여기에 펫관련 정책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것이 경제, 산업적으로나 국민의 삶의 측면에서 모두 매우 큰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필자의 군 동기이자 주요 방송사의 고위직으로 있는 방송기자가 말하길 “동물이 나오면 저녁 뉴스의 시청률이 올라간다”고 할 정도이니 우리가 펫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10여 년간 뜻하지 않게 대통령의 숫자보다 많은 대통령을 겪으며 우리가 본 펫정책은 뭔가 알맹이가 빠진 앙꼬 없는 찐빵 같은 느낌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모두가 펫산업 진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펫 즉, 반려동물의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생산과 유통에 대해서는 말을 꺼리기 때문이다.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을 눈앞에서 보는 모양새다.

최근 정권의 경우에도 펫보험 활성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펫산업 진흥정책이 정책집에 화려하게 리스팅되었지만 어떻게 건강하고 우수한 동물을 시장에 공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전 대통령 본인이 품종 스탠다드에 높은 수준으로 부합하는 비숑 프리제를 안고 나와 대국민 설인사를 드릴 정도의 애견인임에도 산업의 핵심이자 근간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며 정책입안자들의 전문지식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펫과 관련하여 다양한 입법에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몇몇 단체의 캠페인에 경도된 인지부조화에 따른 결과인지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브리더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산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농업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AI를 이용한 최첨단 스마트팜 기술도 중요하고 해외 수출 판로를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며 안전한 먹거리를 걸러내기 위한 모니터링시스템이나 해외 농업선진국 벤치마킹도 필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농업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농업기업들이 타 산업으로 전환하여 양질의 농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 감소한다면 어떨까?

그런데 그러한 농업인의 감소가 사실은 농업생산과정을 옭아매는 잘못되고 과도한 규제나 농업인을 멸시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선동 때문이라면 정책 입안 당국의 입장에서는 농업 발전을 위한 멋진 꿈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펫산업도 마찬가지다. 펫산업이란 말 그대로 펫으로 길러지는 동물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중요한 근간이다. 이러한 펫은 우수한 생산자에 의해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게 만들어져야 하고 제대로 사회화가 되는 방식으로 길러져야 하며 투명한 유통채널을 통해 최종 소비자가 합리적인 비용으로 분양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이러한 일들은 누가 담당하는가? 아시다시피 이런 일은 유기동물보호소나 동물보호단체 또는 수의사가 아닌 브리더라는 직업군이 담당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브리더’라는 말이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다. 그간 우리 사회가 펫을 긍정적으로 보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반면, 그런 펫을 길러내는 브리더에 대해서는 오해하거나 백안시를 넘어 멸시해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브리더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되짚어 보겠다.

브리더(breeder)는 브리드(breed)하고 동시에 브리드(breed)를 만드는 사람이다. 앞의 브리드는 동사로 번식하다라는 의미이고 뒤의 브리드는 명사로 특정한 품종을 의미한다. 즉, 브리더는 중의적 의미이다. 하나는 새끼를 낳는 과정을 관리하여 동물의 숫자를 늘리는 사람을 의미하며 또 다른 하나는 특정한 외형이나 성격 등의 성질을 가진 동물을 개발(즉, 육종)하고 그걸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사람이다. 물론 정의가 무엇이건 둘 다 펫산업의 측면에서는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2016년 이후 브리더의 맥 끊겨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육종학, 특히 동물육종학의 후진국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가 보는 개나 고양이의 품종 중 우리나라에서 육종된 품종은 실질적으로 없다. AKC나 FCI 등 주요한 국제 품종견 혈통등록기관에서 공인받은 품종견은 진도 정도가 유일하며 고양이는 그나마도 없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코리안 숏헤어는 공인된 품종이 아니라 그저 애칭일 뿐이다.

반면 포르투기즈 워터독이나 아메리칸 불리(이상 개), 재패니즈 밥테일이나 러시안 블루, 이집션 마우(이상 고양이) 등 특정한 국가의 이름을 딴 품종 동물들은 그 수가 결코 적지 않다.

이처럼 우리가 육종학의 후진국인 이유는 단순하다. 관련 역사가 짧고 전문인력이 부족하며 정부의 투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는 젖소나 돼지, 닭의 모축을 직접 생산하지 못하고 해외에서 만들어진 품종(개체)에 의존한다.

우리가 해외 펫문화 선진국에 비해 극도로 짧은 펫 역사에도 불구하고(우리가 개를 실용축이 아닌 펫으로 기르기 시작한 것은 불과 80년대 무렵으로 기억한다. 고양이는 2000년대에 접어 들며 부터이다.) 나름대로 국내에서 여러 경로와 단체를 통해 펫브리더를 멋진 직업의 하나로 구축하고자 적지 않은 노력이 있어 왔다. 그러나 2016년 이후 실질적으로 이런 자생적 움직임의 맥이 완전히 끊겨 버렸다.

2016년 개정된 동물보호법은 개와 고양이를 사업 목적으로 생산하고 유통하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도록 했고(기존 규정을 강화하여 처벌을 강화했고) 이 허가의 전제조건으로 축사 허가를 받은 건물을 요구하게 되었다.

소규모 생산업이라고 하여 일정한 규모 이하의 생산자는 단독주택도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두었지만 단독주택이 사라져가고 있는 대부분의 도시지역에서 브리더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실질적으로 남아 있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펫 브리더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법의 한 단어가 일군의 양심적인 직업인을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 넣어 버린 것이다. 안타깝고도 황망한 일이다. 이와 더불어 펫산업의 성장 가능성도 안개 속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법령의 변경은 이른바 동물권단체의 리드 하에 주도면밀하게 진행된 것 같다. 그들은 2016년 모 TV프로의 애견 번식장 고발 프로가 터지자마자 마치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듯 몇몇 국회의원과 협업하여 반려견과 고양이의 생산과 유통을 높은 수준으로 규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그렇다 국회의원이 아닌 동물권 단체가 통과시켰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대부분의 브리더는 사라지고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사지말고 입양하세요’라는 유기동물 입양 촉진 캠페인을 벌여 왔고 여러 성명을 통해서 반려동물의 생산이 유기동물 문제의 원흉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으며 미국의 극단적 동물 관련 캠페인으로 유명한 PETA가 그러하듯 대형 애견 번식장과 브리더를 구분하지 않는 오류를 범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브리더로 꿈을 키워가던 수많은 브리더들은 새로 바뀐 규정을 맞출 수가 없어 오랫동안 운영해온 켄넬과 캐터리를 접어야 했다.

대다수의 브리더는 수익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닌 취미 목적의 소규모 켄넬/캐터리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새로 바뀐 법규를 충족시키는 이른바 축사나 단독주택을 확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펫브리더의 80-90%가 수년내에 사라졌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경제적 성과를 내고있는 이른바 상업브리더나 규모가 되는 브리더들은 어렵사리 법에서 정한 규정을 맞출 수 있었지만 반려동물을 생산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날이 갈수록 부정적으로 바꾸어 가는 세간의 시선에 참담함을 느꼈고 시간이 지나며 점차 그 숫자가 줄어들게 되었다.

법이 바뀐 지 10여 년이 지나다 보니 당시 40~50대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브리더들은 50~60대가 되며 회한만을 남긴 채 브리딩을 접게 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로 이른바 후속 브리더 세대가 새로 시장 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 이렇게 브리더들이 사라진 개와 고양이 생산 및 분양시장은 그럼 어떻게 되었을까? 몇몇 동물권 단체가 악마화하는 품종견과 품종 고양이가 모두 사라지고 유기동물만 입양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을까? 모두가 알다시피 그렇지 않다. 동물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바로 그 10년 전 강아지 공장이라고 야심차게 고발한 그 문제의 번식장은 끈질기게 살아 남아 있다.

이쯤오면 또 다시 의문점이 생겨날 것이다. 대형 번식장과 브리더 사이에 실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냐고? 브리더가 없더라도 대형 번식장에서 우수한 강아지와 새끼 고양이를 생산하면 그만 아니냐고? 그럼 충분히 시장에 유의미한 수준의 신규 개체가 공급되고 따라서 관련 산업도 성장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일견 이런 지적은 타당한 것 같지만 사실 여기서 간과된 2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그건 바로 브리더와 대형 번식장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아래의 표를 구성했다.

자료 필자제공
자료 필자제공

이제 우리는 브리더가 펫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함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나마 이해했다. 그렇다면 펫산업이 더욱 융성하기 위해 우수한 펫 브리더가 늘어나야 하는데 어떻게 이러한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여 이른바 K-Pet산업이 국제적인 위상을 높일 수 있는지 알아보자.

관련 규정 개정해야 한다

제일 먼저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현행 동물보호법의 생산업과 관련한 축사 및 단독주택 관련 규정을 개정하여(심지어 이는 법률이 아닌 시행규칙의 부칙 수준에서 정의하고 있다) 다른 펫관련 업태와 마찬가지로 소규모라는 일련의 전제조건하에 동물병원이나 동물위탁업(호텔, 유치원 등)처럼 근린생활시설에서도 영업이 가능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법제처의 최근 유권해석에 따르면 생산업은 동물이 24시간 머물기 때문에 근린생활시설에서는 허가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관계를 호도한 왜곡된 판단이다. 이러한 준거가 마땅하려면 동물병원에는 입원실이 사라져야 하며 동물호텔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심지어 검역시설도 축사나 단독주택이 아닌 곳에 허가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관련 조항의 폐기 및 개선은 펫산업의 도약을 위해 긴요하다 하겠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바로 각 후보 진영 및 각 당의 펫산업 정책위원회에 브리더나 펫산업계를 대표하는 전문가 집단이 대규모로 참여해야 한다.

국회에는 동물복지포럼이라는 조직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수년 전 처음 이 포럼이 창설되었을 때에는 이른바 동물권 단체와 펫산업계 모두가 균형을 이루어 포진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다시 확인한 바로는 이제 펫산업계는 유명무실하거나 명단에서 빠져버렸고 모든 논의는 동물복지를 넘어 동물권을 주창하는 단체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동물권이 무엇인가? 동물권은 동물해방과 동의어로 동물을 먹는 행위를 포함하여 동물을 펫으로 기르는 행위도 부적절한 것으로 정의하고 말 그대로 모든 동물의 해방 내지 동물과 사람의 동등한 지위를 요구한다.

현행 헌법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을 넘어 인류의 모든 문화와 역사는 물론 자연계의 기본적인 생태 법칙을 부정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반려동물을 산업 및 문화의 대상으로 보는 현행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되 그들의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하는 동물복지이지 결코 동물권(단순히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는 아름답고 순진한 생각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 아니다.

이런 단체가 동물산업과 관련한 법안을 좌지우지한다면 그 결과는 펫산업의 발전이 아니라 폐업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펫과 관련하여 모든 동물과 관련하여 이념이 아닌 실용과 국제적 기준에 기반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극단적 사상을 배제한 채 실무 전문가 중심의 조직이 구성되고 여기에서 합리적이며 실행 가능한 정책들이 도출되어야 한다.

마지막은 단순하다. 펫산업 진흥과 관련한 주요 정책에 최소한 브리더의 가치를 인정하는 강령과 이에 기반한 실용적 정책이 반영되어야 한다. 진흥이 된다면 더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의 활동 기반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루시법은 대표적 악법

지난 국회에서 입안되었다가 회기경과로 폐기된 루시법이 브리더를 폄훼하고 펫산업을 나락으로 밀어 넣는 대표적인 악법이다.

이 법이 입안된 영국에서는 본디 브리더가 생산한 동물에 대해 최소 분양기간에 대한 예외(비 브리더 생산 개체는 6개월 이후 분양하도록 함으로서 실질적으로 불법 대형 번식장의 폐업을 유도)로 두고 있으나 이 법이 동물권 단체를 중심으로 지난 회기에서 동물복지포럼 소속 의원들에 의해 발의될 때에는 교묘하게 이런 조항은 삭제된 채 선을 보였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법의 입안을 주도한 단체들은 동물복지가 아니라 동물권이라는 사상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브리더는 강아지, 고양이 공장과 동의어이며 이들은 유기동물의 발생 원인이 중성화하지 않은 마당개 및 들개 그리고 누구나 쉽게 동물을 기를 수 있는 현 시스템이 아니라 동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선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브리더에 의한 반려동물 생산에는 죄가 없음이 확인된 바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 밝혀져

60여일간의 대선 레이스에서 각 후보진영들은 폼나고 멋진 정책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자가 제시한 문제와 같은 것들은 지엽적인 또는 일부 이익단체 내지 업자의 푸념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 동물권 단체는 필자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공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하기 바란다. 진실은 무겁고 말은 가볍다.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떠든다고 그의 말이 진실일까?

많은 새로운 사상은 쿨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급격히 그 세를 넓히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빛이 바래는 경우가 많다. 지난 세기 초에 우리는 그러한 사상이 가져온 폐해를 지독하게 경험했다. 동물에 관한 급진적인 생각들도 그러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선량한 사회구성원들이 또는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전문가들이 소외되고 이로 인해 산업과 문화가 후퇴하거나 왜곡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직 우리에겐 펫산업을 구렁텅이에서 구할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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